새해에는 세상이 좀 더 다정하기를건강하게 일하고, 건강하게 즐기는 카페 상재형 미래본병원 가정의학과 원장 | 카페 Sano 대표 2023년은 계묘년(癸卯年)으로 검은 토끼 해다. 토끼는 보통 온순하며 다산하는 평온한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마냥 귀여운 동물만은 아니다. 농가의 재배 작물들을 가리지 않고 뜯어먹어 피해를 입히고 무서울 정도로 번식력이 좋아 다른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160년 전 호주의 목축업자 토머스 오스틴은 1859년 영국에서 사냥용으로 토끼 24마리를 들여왔는데 이들은 수년 만에 수천 마리로 불어나 버렸다. 늘어나는 토끼를 막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천적을 들여오거나 심지어 토끼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렸음에도 모두 실패하고 160년이 지난 현재 약 2억 마리의 토끼가 당당히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토끼는 쥐와 더불어 실험용으로 자주 쓰이는 동물인데 오래전 실험이지만 재밌는 실험이 있다. 1978년 로버트 네렘(Robert Nerem)박사 연구팀은 고지방 식단과 심장 건강의 연관성 규명을 위해 ‘표준 토끼 모델’이라 부르는 간단한 실험을 했다. 비슷한 유전자의 토끼들에게 몇 달간 고지방 사료를 먹이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맥박수, 혈압 등을 비교했는데 예상대로 대부분 콜레스테롤 수치가 상승했다. 마지막으로 토끼들의 미세혈관을 현미경으로 관찰했는데 의아하게 유독 한 그룹의 토끼들만이 다른 그룹보다 혈관 지방 성분이 60%나 더 낮았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연구팀은 연구과정을 다시 분석했고 그 결과 무리나 레베스끄(Murina Levesque)라는 연구원이 돌본 토끼들만 지방 함량이 더 낮은 것을 확인했는데 이 연구원은 다른 연구원들과는 달리 단순히 먹이만 준 것이 아니라 토끼들에게 말도 걸고 껴안고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줬다고 한다. 연구팀은 실험 조건을 더 엄격히 통제하고 다시 실험했음에도 동일하게 레베스끄가 돌본 토끼들의 혈관 상태가 더 좋았음을 다시 확인했고 이 연구결과를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신체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더 이상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외로움은 스트레스를 증가시켜 우리의 호르몬 밸런스를 깨뜨리고 염증반응을 촉진시키며 뇌 영상 연구 결과 배신감을 느낄 때 뇌는 칼에 찔린 것과 비슷한 고통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관계 결핍이 지속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질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 분석에 따르면 외로움은 조기 사망 위험을 50% 증가시키고 심장질환과 뇌졸중 발병률을 약 30% 증가시켰다고 하니 이는 하루 담배를 15개비 피우거나 과음하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위험이다. 작더라도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한 행동과 표현이 우리를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 흔히 의사들 사이에서 하는 말 중 ‘불친절해도 똑똑한 의사는 환자를 살리지만 친절하기만 한 의사는 환자를 살릴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연구결과들을 보면 친절함과 다정함 역시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무기임에 틀림없다. 암에 걸렸음에도 건강하게 생활하는 이도 있고 의학적으로 아무 병이 없음에도 항상 몸이 아프고 불편한 사람들도 있다. 또는 비슷한 신체조건에 같은 병을 가지고도 판이하게 다른 결과를 보여주는 환자들도 있다. 대부분 의사들은 환자를 보고 진단할 때 검사 수치와 결과로 판단을 하지만 조금 더 넓게 환자 주변의 가족과 사회활동, 성격 등을 보면 환자의 상태가 좀 더 정확하게 보이기도 한다. 예전 전공의 시절을 돌이켜 봐도 VIP실에서 외롭게 혼자 있는 환자들보다 좁고 시끄러운 다인실이라도 가족들이 항상 보살피고 챙겨주는 환자들의 경과가 더 좋았던 기억이 있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시간들이 겨우 지나자 불경기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금리와 물가가 오르고 팍팍해진 인심에 다들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졌다. 심지어 가족들이 한 집에 모여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기 일쑤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면 서로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보자. 멀리 있다면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위로가 필요한 이에게 어깨를 두드려 주거나 사랑하는 이에게 살포시 포옹을 해주며 건강하고 행복하길 소망해 보자. 그렇게 새해는 좀 더 다정한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References1. 켈리 하딩, 다정함의 과학, 더퀘스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