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에도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일본의 지역 카페문화 탐방기 Reporter 이경수(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국내의 음식업종별 사업자 현황을 다룬 흥미로운 통계를 본 적이 있다. 5년 동안 간이주점과 호프 전문점은 각각 33%, 25% 감소했으나 커피음료점은 80% 폭증했다. 몇 걸음만 걸어도 커피 전문점을 쉽게 볼 수 있고 점심시간이면 커피를 마시며 길을 걷는 모습이 일상이 될 정도로, 수요는 엄청나게 늘었으나 그에 비해 진입장벽은 낮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커피음료점의 평균 사업 존속 연수는 겨우 3년 1개월로 100대 생활업종 가운데 두 번째로 짧다. 진입하기는 쉬우나 숫자가 많은 만큼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아서일 것이다. 고베지방의 명품 커피 단케 커피 문외한에서 커피 마니아로일본은 한국에 비해 카페와 커피 문화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길지만 변화의 속도는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일본에는 오랜 시간을 거쳐 나름의 매력이 정착된 아담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다. 90년대 초 일본 유학 당시에는 일본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즐겨 마시곤 했다. 처음에는 잠을 쫓기 위해 커피와 차를 마셨으나 지금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커피나 차와 함께한다. 나도 모르는 새 마니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좋아하다 보니 알고 싶어져서 커피와 차를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취득한 덕분에 어설픈 대로 마니아 흉내를 내게 되었다. 진짜 전문가들이 보면 웃을지 모르나 남들이 뭐라든 나는 진심으로 커피의 향과 맛을 즐기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아침에 출근하면 커피부터 준비한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그라인더로 조금 굵게 분쇄해서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원두의 종류와 배전을 고려해 드리퍼를 선택한다. 물의 온도와 양과 속도를 조절해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부드럽고 매혹적인 커피 향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지방의 명품 커피숍 나고야의 고메다 커피숍 (커피시키면 샌드위치 따라 나온다) 일본 지방 커피의 지킴과 서비스스스로 생각해도 커피와 차를 대하는 자세가 전과 확실히 다르다. 캔 커피와 자판기 커피만 마시던 내가 이제는 생두를 직접 골라 로스팅하고 드립해서 마시고 있으니 말이다. 단순히 잠을 이겨내고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마시던 커피에 대한 관심이 세월과 함께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7년 방문 교수로 나고야대학에 일 년간 체류하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자전거로 커피 투어를 다녔다. 나고야에는 나고야만의 독특한 ‘모닝 문화’가 있다. 그중에서도 ‘고메다 커피점’의 모닝 서비스는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오전 11시 이전에 커피를 주문하면 무료로 토스트와 삶은 달걀 등이 곁들여 나온다. 달걀 대신 달콤한 팥소나 달걀 페이스트를 선택할 수도 있다. 고메다 커피점에 가면 나는 항상 ‘닷푸리 커피(톨 사이즈 커피. ‘닷푸리’는 일본어로 ‘듬뿍’이라는 뜻)’를 마신다. 잡지와 신문을 뒤적이며 여유를 즐기다 보면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돈다. 힐링이 따로 없다. 고메다 커피점에서는 커피 한 잔을 시켜도 여름에는 시원한 물수건, 겨울에는 따뜻한 물수건을 가져다준다. 나무의 비율이 40% 이상이면 안정감을 준다고 하는데 고메다 커피점의 실내는 목재를 많이 사용하고 천장과 칸막이가 높아 옛날식 다방처럼 아늑하고 푸근한 느낌을 준다. 왠지 옛 추억이 서려 있을 것 같은 복고적인 분위기와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진심이 느껴져 자주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중세 유럽의 신사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의 로고에 얽힌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이 로고는 단골로 다니던 디자인 학교 학생의 작품이라고 한다. 연습 삼아 로고를 그리고 싶었던 학생이 몇 가지 도안을 제시했고, 현재의 디자인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고 한다. 100년이 넘은 건물에 생겨난 지방의 명소가 된 스타벅스 문화재 건축물과 카페 일본의 카페와 건축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최근에 가 본 카페 중 인상적이었던 곳은, 유형문화재를 리모델링해서 영업하는 가고시마의 ‘스타벅스 센간엔점’과 도쿄의 옛 이와사키 저택 정원의 카페이다. 사쿠라지마가 보이는 웅장한 센간엔은 일본의 대표적인 봉건 시대 다이묘의 정원이다. 국가 지정 문화재이며 미국의 CNN이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선정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센간엔 입구에 있는 스타벅스 센간엔점 건물도 유형문화재이다. 일본의 문화재 건물에 미국의 커피 체인점 스타벅스가 자리 잡고, 그곳에서 한국인인 내가 커피를 마시는 풍경.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공존하는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도쿄 다이토구에 있는 중요 문화재이자 미쓰비시 창업자의 장남이 살던 옛 이와사키 저택 정원의 카페도 유명하다. 일본과 서양의 건축이 공존하고 있다. 그 밖에도 일본에는 문화재 건물에서 영업하는 카페가 많다. 한국에도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그대로 또는 살짝 개조한 카페가 최근 늘어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어 커피 마니아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오랜 시간의 자취가 남아 있는 운치 있는 건축물과 커피 향이 조화를 이루는 일본의 카페는 볼거리와 이야기가 풍성해 지역사회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고풍스러운 첨탑이 솟아있는 방송대의 역사기록관도 100년이 넘는 역사와 건축학적 가치를 지녔다. 1900년대 초, 가장 주도적으로 지어졌지만 유일하게 남은 서양식 목조건물, 일제강점기에 공업 관련 검정시험과 기술교육 등을 담당했던 기관, 재료는 목조이지만 외형은 서구의 석조 건축물을 닮은 르네상스풍의 이 건물에 일본처럼 카페가 들어선다면 한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본처럼 지역사회의 명소가 될 수 있을까? ..(중략).. *이 콘텐츠는 월간 커피앤티 10월호(NO.261)의 내용 일부입니다.더 다양한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카페 트렌드 매거진 커피앤티를 매월 받아보기⬇